Wednesday, June 2, 2010

July 23, 2005

(http://veryeasyenglishtutorinbusanseoulandbeyond.cyworld.com) July 23, 2005. Saturday. I'm back in NYC-- since Wednesday, July 20th. Check out my home for the last four months at: http://yeosu.immigration.go.kr/ -I managed to get the interest of Yeosu MBC investigative reporter, BOM GIYOUNG, who interviewed CHOI SEONG GUN, a Korean Chinese worker; YANG SEUNG CHUN, a Yeosu Immigraton senior officer--the JosaShiljang; and KIM SEONG SUP, of the local Labor of Ministry office. The report: http://www.ysmbc.co.kr/news/news_view.html?category=MBC?????µ•¿Ã&uid=34305&p=7 ?Ûº?æÔ-R(ø©ºˆ) ????: ¸±‚ø?,??µÓœ¿?: 2005.07.12 ?? : 17 ?£¡£Œ?? and before on May 20th: http://www.ysmbc.co.kr/news/news_view.html?category=MBC´º½ºÅõµ¥ÀÌ&uid=31897&p=34 -- the july 12th broadcast (from the 12 min point) http://www.ysmbc.co.kr/home/bbs.php?table=newstoday_vod&query=view&uid=773&p=3 -- the OHMYNEWS.COM story--Prison Diary of an English Teacher - i agitated continuously for better conditions at the detention center, legalization and emancipation -- through petitions to the National Human Rights Comission of Korea and other institutions, institutions. --part 1 http://english.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no=226771&rel_no=1 --part 2 http://english.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no=226858&rel_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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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veryeasyenglishtutorinbusanseoulandbeyond.cyworld.com) July 23, 2005. Saturday. I'm back in NYC-- since Wednesday, July 20th. Check out my home for the last four months at: http://yeosu.immigration.go.kr/ -I managed to get the interest of Yeosu MBC investigative reporter, BOM GIYOUNG, who interviewed CHOI SEONG GUN, a Korean Chinese worker; YANG SEUNG CHUN, a Yeosu Immigraton senior officer--the JosaShiljang; and KIM SEONG SUP, of the local Labor of Ministry office. The report: http://www.ysmbc.co.kr/news/news_view.html?category=MBC?????µ•¿Ã&uid=34305&p=7 and before on May 20th: http://www.ysmbc.co.kr/news/news_view.html?category=MBC´º½ºÅõµ¥ÀÌ&uid=31897&p=34</P><P><BR></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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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HMYNEWS.COM story--Prison Diary of an English Teacher

- i agitated continuously for better conditions at the detention center, legalization and emancipation -- through petitions to the National Human Rights Comission of Korea and other institutions, institutions. --part 1

--part 2 http://english.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no=226858&rel_no=1





"체포·구금은 미봉책... 다른 처벌방법 찾아야"

fitzcarl2005.07.28 05:53조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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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glish.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print.asp?menu=c10100&no=226782&rel_no=1&isPrint=print



http://english.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menu=c10100&no=226782&rel_no=1&back_url=



"체포·구금은 미봉책... 다른 처벌방법 찾아야"

[전문]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 보호소에서 보내온 편지

Email Article Print Article 오마이뉴스 (news)

지난 5월 2일 한 미국인이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에 긴 편지를 보내왔다. 불법 체류자 상태에서 영어강사를 하던 그는 지난 3월 24일 부산에서 경찰에 연행됐다. 이 미국인은 현재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소에 수감돼 있다. 그가 보내온 편지에는 외국인 보호소의 실태가 담겨있다. 이름은 익명 처리했으며 내용이 훼손당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거친 부분은 편집했다... 편집자 주



관련기사

Prison Diary of an English Teacher (2)

[영문편지 원문] Prison Diary of an English Teacher



남보다 일찍 잠에서 깬다. 4월 14일 새벽 6시가 조금 지났다. 새벽 6시55분 경 경비들이 불을 켰다. 하루 중 이때만 제대로 된 사고가 가능하다. 앞으로 닥칠 하루에 대해 준비하는 시간이며, 내가 나로서 온전히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해는 이미 떠올랐다. 화장실 창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감방 앞 복도 창문으로 삼면이 언덕으로 둘러싸인 마당이 보인다. 언덕 위에는 나무와 덤불들이 있고, 꼭대기에 송전탑이 서 있다.



법무부 여수출입국관리소 외국인 보호시설에서 맞는 15일째 아침이다. 여수로 이송되기 전에는 부산 출입국 관리소에서 7일을 보냈다. 2005년 3월 24일 목요일 해당 비자 없이 부산의 한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혐의로 두 명의 경찰관들에 의해 연행됐다.



짧은 심문 과정을 거쳐 유죄로 형을 선고받았다. 달리 말하면 강제추방 수순을 받기 위해 출입국 관리소로 넘겨졌다. 출입국 관리소는 나에 대한 죄목이 성립된다며 한국을 떠날 것을 결정했다.



나를 다뤘던 방식이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면, 즉시 시정되어야한다



"한국 시민이 되고 싶습니다"



친애하는 한국 국민들께. 저는 뉴욕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부모님은 자메이카 출신으로 저는 34세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했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공부하며 한국 시민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스스로 선택한 고향을 보다 최상의 곳으로 만들기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부산 출입국 관리소에 처음 끌려왔을 때 여권을 제시하길 거부했더니 말뿐만이 아니라 신체적 위협이 가해졌다. 최소 7명의 출입국 관리소 직원과 경찰들이 나를 억지로 누르고 여권을 빼앗아갔다. 그 중 한 명은 내 입을 눌러 거의 숨이 막힐 뻔했다.



내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엔 어느 아프리카 국가에서 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미국인이란 사실을 알고나서는 그들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경찰이나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 자신들의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는데 뭐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난, 내 인권이 침해받았다고 믿는다.



그들의 처벌이나 보복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신원을 밝히는 과정에서 나를 다뤘던 방식이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면, 그러한 방식은 즉시 시정돼야 하고,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경찰과 출입국 관리소에서의 구류상태에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내 권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통보 받지 못했고, 지금까지 부딪친 경찰과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한다.



체포 당시 권리를 알지 못했고, 판사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진술서를 작성할 때만 통역을 불러줬다. 진술서를 작성하고 질문을 담당했던 경찰관은 내가 한밤중에 출입국 관리소에 끌려왔고, 7명의 공무원들한테 말과 신체적으로 협박받았다는 사실은 은근슬쩍 넘겨버렸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왜 공장주인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가



동료 수감자인 덩치 큰 몽골인은 노래를 잘 부른다. 슬픈 가성으로 부르는 노래는 멀리 떨어진 고향의 넓고 푸른 초원,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옥한 풀밭, 사막, 광대한 하늘을 그리워하는 걸로 들린다.



내 친구 G(37살)에 따르면 러시아, 중국, 태국, 필리핀에서 온 7명의 여성들이 내일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다행이다. G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 그는 플라스틱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불법 체류자로 일했다. 그와 아내는 인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온 동료들과 함께 출입국 관리소 직원에게 체포당했다.



매일 아침 그는 공장 상사(사장일지도 모른다)에게 전화 걸어 밀린 임금을 달라고 사정한다. 돈을 받지 못하면 집에 돌아갈 비행기 티켓을 살 수 없고 그러면 계속해서 갇혀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정부에서 비행기 값을 내준다고 하더라도 고향에 돌아가서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G는 한국에 9년 동안 있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돌아갈 집이 없다.



(여수와 부산 출입국 사무소 직원들과 나눈 얘기에서) 내가 들은 바로는 불법체류 노동자들의 고용주는 밀린 임금을 갚아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 고용주들은 이를 어기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M은 전 고용주가 자신들(이곳에는 그의 동료 4명도 함께 있다)한테 마지막 3개월 동안의 임금을 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 돈 없이는 집에 갈 수 없고, 그래서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왜 그런 공장 주인들에게 책임을 묻고 자산을 압류하지 않는 것일까? 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돈을 찾고 제 각기 살길을 찾아가게 하지 않고 여러 주에서 여러 달, 아님 그 이상을 억류하는 것일까? 이 감호소 안에서 이들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철창 안에 갇힌 사람만 괴로운 게 아니다. 철창 밖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유 뺏을 권리 있다면 건강도 책임져야



내 친구 I는 31세로 왼쪽 어깨에 종기가 나 있다. 우리가 주간 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의사는 감호소에서 그를 치료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 무슨 알약 처방전을 받기는 했다. 하루라도 빨리 외부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지만, 당국은 외부에서 발생하는 의료비용은 I가 스스로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I는 자기가 병원비로 돈을 썼다가는 비행기표를 살 돈이 더 모자라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출입국 관리소가 우리의 자유를 뺏을 권리가 있다면 우리의 건강도 책임져야 하는 일이 아닌가? 우리의 복지, 우리의 삶 자체가 그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그들의 통제 속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4월 11일 월요일 밤 9시30분, 여성 한 명이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다.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천만다행으로 너무 늦기 전에 발견되었다. 하지만 늦은 시간인데다가 직원 부족으로 도울 사람들이 늦게 왔다. 내가 들은 바로는 화장실 창문 밖 창살에 타월을 사용해 목을 맸다고 한다. 나와 감방 동료, 감호소 전체가 비명과 고함 소리를 들었다. 우리 모두 처음에는 싸움이 벌어진 줄 알았다.



지난밤(4월 22일)에는 화재가 일어났다. 새벽 3시30분 경에 발생했는데 러시아인 3명이 일으킨 것 같다고 들었다. 이들은 지금 독방에 갇혀 있다. 화재가 일어나기 전 아래층에서 TV 수리를 요구하며 항의하는 소리가 들렸었다. 화재를 일으킨 사람들이 그 중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행히도 화재는 진압되었지만 반대의 경우였다면 어떠했겠는가? 철창 안에 갇힌 누구도 스스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화재가 난 동안 우리 층의 경비들은 어떻게 할 지 모르는 것 같았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중 한 명은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 시설에는 직원이 모자라고 예산도 달린다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다. 구치소를 안전하게 운영하기에는 직원, 경비 등이 부족하다. 전화나 TV를 수리하기 위해 수리공이 오면 우리와 함께 감방에 갇히게 된다. 이는 순전히 우리가 그 사람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경비들이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이 시설에 갇혀있는 우리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는가. 항소, 보호관찰, 법률상담의 권리가 없는 것인가. 범법 행위로 수감된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권리를 우리는 어느 하나 누릴 수 없다. 훨씬 심한 범법행위를 저지른 한국인들도 우리보다 나은 권리를 누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저지른 범죄라는 게 무엇인가. 먹고살기 위해 일한 게 죄인가. 여기서 우리는 한국 정부 비용으로, 한국국민들이 낸 혈세로 매일매일 조금씩 말라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왜 우리를 창살과 자물쇠가 달린 이곳에 가두고 있는가. 교회 가는 길인데도 어째서 쇠고랑을 채우는가.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직업을 갖고 일하던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는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하루 세 끼 밥만 먹고 있다. 우리한테는 뭔가 할 일이 필요하다. 최소한 희망을 갖고, 그것도 아니면 위엄만이라도 지킬 수 있도록 뭔가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여기에 너무 오래 갇혀 있다. 비행기 값을 지불하고 집으로 보내는 게 나은가, 아니면 무한정 오랫동안 가둬두며 그 비용을 다 감수하는 편이 나은가? 내 생각에 이는 경제적으로 어리석은 짓이고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다.



우리가 법을 어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보다는 나은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경제적인 면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처벌을 위한 형사기관 대신에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대안적 정책은 어떠한가. 강제추방을 위해 노동자들을 체포, 구금하는 방식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법은 고용주의 손을 들어주고 노동자들에게는 가혹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현재 노동자들은 쫓기고 감금당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라고 명령받는다. 운이 좋으면 고용주들이 체불임금을 지불해 준다.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한다. 왜 감옥에 집어넣기 전에 임금을 받을 기회를 주지 않는가.



2005/05/17 오후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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